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태어난 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1938)는 19세 때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였고, 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첫 연설을 함으로써 탁월한 웅변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도산 안창호는 뛰어난 조직가로 1907년 29세 때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09년에 청년학우회, 1912년 대한인국민회, 1913년에 흥사단, 1928년에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지내면서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대공주의에 입각하여 좌우합작운동에 매진, 1923년에는 대한독립당을 결성하고 중국 남경에 독립운동 근거지로서 이상촌 건설을 시도하였다.
그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사건의 여파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1938년 3월 10일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서거하기까지 도산의 육십 평생은 나라사랑, 겨레사랑의 표본으로서 오늘날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산업 등 많은 영역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